제천의례 13

제국의 탄생, 외신과 외교문서로 본 반응

1. 제국 선포, 외신과 외교기관의 첫 반응1897년 10월 12일, 고종은 환구단에서 제천의례를 거행하고 대한제국의 황제로 즉위함으로써, 새로운 국가체제의 탄생을 대내외에 공표했다. 이는 단지 국호와 연호를 바꾸는 수준을 넘는 정치적 선포였으며, 당대 세계 각국의 언론과 외교기관도 이에 주목했다. 고종의 제천의례 직후 대한제국의 수립은 『The Independent』, 『The Korean Repository』, 『The New York Times』와 같은 당대 외신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보도되었다. 특히 서울 주재 외국인 거주자와 선교사들이 주필로 참여하던 『The Korean Repository』는 황제 즉위와 관련된 국내외 반응을 상세히 기록했으며, 고종의 정치적 결단을 '조선의 주권적 의지의 ..

환구단 이야기 2025.08.03

고종은 왜 대한제국을 선포해야 했는가

1. ‘황제 즉위’의 꿈은 언제 시작되었는가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1897년은 조선의 역사에서 가장 중대한 정치적 전환점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제국 선언’은 하루아침에 결정된 것이 아니었다. 그 배경에는 조선 후기의 왕권 약화, 국제 정세의 격동, 그리고 고종 개인의 정치적 이상과 고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고종은 이미 임오군란(1882)과 갑신정변(1884), 갑오개혁(1894~1895) 등을 거치며 외세의 간섭 속에서 왕권의 지속을 고민해 왔다. 특히 1895년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에 의해 시해되는 ‘을미사변’ 이후, 고종은 일본에 대한 극도의 불신과 공포를 갖게 되었고, 이는 왕권 강화를 통한 체제 수호의 강한 동기로 작용하였다. 1896년 아관파천으로 러시아 공사관에 머문 고종은 국제..

환구단 이야기 2025.08.02

환구단 제례의 유산과 현대적 재해석: 단절에서 시민의 참여로

1. 단절된 의례와 기억의 공백서울 소공동의 환구단 황궁우는 오늘날 웨스틴조선호텔 뒤편의 작은 정원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단순한 고건축이 아니라, 19세기 말 대한제국이 하늘에 제를 올리며 국가의 정체성을 천명했던 제단이었습니다. 문제는 이 전통이 일제강점기라는 폭력의 시간을 거치며 완전히 끊겼다는 점입니다. 1913년, 일본은 환구단 본단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조선철도호텔을 세웠습니다. 이는 단순한 도시 개발이 아니라, 대한제국의 상징을 지우려는 의도된 행위였습니다. 이후 환구단 제례는 중단되었고, 종묘제례나 사직대제와 달리 해방 이후에도 복원되지 못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환구단은 교과서 속에서조차 희미하게 다뤄지며, 시민들의 기억 속에서 거의 사라진 공간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단절..

환구단 이야기 2025.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