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6

소공동과 환구단의 역사적 풍경

1. 소공동의 지리와 이름 유래서울의 중심부, 중구에 자리한 소공동은 동남쪽으로 남대문로, 서쪽으로 태평로, 그리고 북쪽으로 을지로와 접해 있는 중요한 지역이다. 오늘날 소공동은 금융기관과 백화점, 고급 호텔들이 밀집한 상업 중심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역사는 조선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소공동이라는 이름은 한자 그대로 ‘작은 공주 골’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조선 태종의 둘째 딸인 경정공주와 깊은 연관이 있다. 경정공주의 부마였던 조대림의 집이 현재 웨스틴 조선 서울 호텔이 위치한 자리에 있었는데, 이 집터 주변 지역을 ‘작은 공주 골’이라 부르다가 이를 한자로 표기해 소공동(小公洞)이라 명명한 것이다. 경정공주가 살던 이 집은 단순한 사저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명나라 사신..

환구단 이야기 2025.08.12

덕수궁과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1. 경운궁(慶運宮)에서 덕수궁(德壽宮)으로: 환구단의 여파와 황궁의 재배치1897년 환구단에서 대한제국이 선포되고 고종은 황제로 즉위하며 조선 왕조를 넘어 새로운 국가 정체성을 선언했다. 이는 동아시아에서 일본, 청나라 등 강대국 사이에서 조선이 자주국으로서 위상을 요구하는 중대한 정치적 사건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칭호 변경을 넘어 국가 주권과 근대화를 향한 의지의 표출이었다. 고종은 1896년 아관파천 당시 러시아 공사관으로 임시 거처를 옮겼다가, 1897년 돌아와 경운궁을 황궁으로 삼았다. 경운궁은 원래 조선 후기의 작은 궁궐이었으나, 정동 일대에 자리 잡아 당시 근대 외교의 중심지와 가까웠다. 이에 따라 고종은 경운궁을 ‘근대 국가의 얼굴’로 만들고자 궁궐 내에 서양식 서재와 근대적 사무공..

환구단 이야기 2025.08.09

[환구단과 정동 공간사③] 해체와 재기억 –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

1. 일제의 권역 해체 전략: 물리적 해체와 상징의 말살1900년대 이후 일제는 대한제국의 상징 공간을 체계적으로 해체했다. 특히 정동과 환구단 권역은 고종의 정치·외교·문화 전략이 집약된 장소로서 일제의 우선적 통제 대상이 되었다. 일제는 환구단의 원형 제단을 1913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조선호텔을 건립함으로써 제국 통치의 공간을 물리적으로 말살하고, ‘천자국’ 대한제국의 상징을 일상에서 지워냈다. 이는 단순한 개발 사업이라기보다는, 대한제국의 상징적 의례였던 천제 의식을 무력화하고 그 기억을 지우기 위한 의도적 기획이었다. 이와 함께 중명전은 궁내부 소속 공간에서 일본 통감부의 행정 관할로 넘어가며 외교의 전초기지라는 기능을 박탈당했다. 정동교회와 배재학당 등 서양 세력과의 연계 지점 역시 일본의 ..

환구단 이야기 2025.07.27

[환구단과 조선신궁②] 해방 이후의 공간 정치: 식민의 흔적과 기억의 재편

1. 광복 후 남겨진 공간들: 해방과 환구단의 침묵 1945년 8월 15일, 조선이 광복을 맞이한 이후 서울 도심 곳곳에는 여전히 일제강점기의 유산이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환구단과 조선신궁은 각각 대한제국의 출범과 일본 제국의 식민지 통치라는 상이한 정체성을 지닌 공간이었기에, 해방 이후 이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는 단순한 공간 정비의 문제를 넘어 새로운 국가 정체성과 기억 체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에 대한 과제를 안겼다.일제의 상징이었던 조선총독부 청사는 광복 후 미군정의 주요 행정기관으로 사용되면서 즉각적인 철거 없이 존치되었고, 그 외곽에 자리했던 제의 공간들 또한 빨리 역사적 위상을 회복하거나 재해석되지 못한 채 모호한 공백 상태로 남게 되었다.환구단은 이미 일제강점기 동안 대부분의 원형이 훼..

환구단 이야기 2025.07.24

[환구단과 조선신궁①] 제국과 식민의 제례 공간, 두 얼굴의 상징성

1. 제국의례의 공간화: 환구단의 창건과 정치적 상징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조성된 환구단은 단순한 제사 장소를 넘어선 정치 상징이었다. 고종은 이곳에서 제왕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전통을 계승한 환구제(圜丘祭, 또는 원구제)를 봉행했다. 이는 유교적 예제의 계승이자, 자주적 황제국으로서의 정치적 정당성을 천명한 행동이었다. 환구단은 단순히 하늘에 제를 올리는 공간이 아니라, 대한제국이 명실상부한 독립 제국임을 대내외에 알리는 정치 무대였다. 환구단 경내에는 상제를 모신 황궁우가 있고, 그 앞 원형 제단에서 황제가 제를 올렸다. 이 구조는 고대 중국의 천단을 모방한 형태로, 황제가 상제를 향해 직접 제를 올리는 형식을 취했다. 이는 천자의 자격을 갖춘 통치자로서 고종 자신을 상징화한 것이었..

환구단 이야기 2025.07.23

환구단이란 무엇인가: 하늘과 소통하던 제단

1. 도심 속 숨겨진 유적, 환구단의 등장서울 한복판,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 뒤편을 지나면 뜻밖의 고요한 공간이 나타납니다. 높은 빌딩 숲 사이로 드러나는 팔각 건물과 둥근 석단, 그것이 바로 환구단입니다. 관광 안내서에도 자주 등장하지 않고, 시민조차 잘 알지 못하는 곳이지만, 이곳은 19세기 말 한반도의 운명을 걸었던 역사적 무대였습니다. 환구단은 1897년 고종이 마련한 제단으로, 대한제국이 공식적으로 탄생한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모습은 그 규모와 위상을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소박합니다. 작은 돌계단과 팔각의 건물이 남아 있을 뿐이지만, 이곳은 단순한 종교적 제단이 아니라 새로운 국가 체제를 알린 선언의 장이었습니다. 당시 조선은 청·일 전쟁 이후 열강의 각축장으로 전락하며 주권을 위협받고..

환구단 이야기 2025.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