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6

서울 속 작은 세계 – 정동과 주변 외국 공관 거리

1. 표현 방식 속 외교의 거리19세기 말, 한양의 서쪽 변두리에 위치한 작은 마을 정동(貞洞)은 불과 수십 년 만에 조선의 국제 외교 중심지로 급격히 변모했다. 덕수궁을 둘러싼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전통 한옥과 기와지붕 대신 붉은 벽돌과 첨탑, 아치형 창문을 갖춘 서양식 건물들이 곳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서울 한복판에 유럽과 미국의 도시 일부가 옮겨온 듯한 이질적인 풍경이었다. 당시 기록과 사진 자료에 따르면, 정동 일대에는 러시아 공사관의 붉은 벽돌과 탑이 인상적이었고, 영국 공사관 등은 유럽식 건축 양식을 띠었다. 미국 공사관저의 경우 초기에는 현지 한옥(목조 가옥)을 매입해 사용했으며, 이후 점차 서구식 요소가 가미된 건물로 변화해 갔다. 이러한 건축 양식의 혼재는 단순한 미관의 변화가..

환구단 이야기 2025.08.10

고종은 왜 대한제국을 선포해야 했는가

1. ‘황제 즉위’의 꿈은 언제 시작되었는가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1897년은 조선의 역사에서 가장 중대한 정치적 전환점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제국 선언’은 하루아침에 결정된 것이 아니었다. 그 배경에는 조선 후기의 왕권 약화, 국제 정세의 격동, 그리고 고종 개인의 정치적 이상과 고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고종은 이미 임오군란(1882)과 갑신정변(1884), 갑오개혁(1894~1895) 등을 거치며 외세의 간섭 속에서 왕권의 지속을 고민해 왔다. 특히 1895년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에 의해 시해되는 ‘을미사변’ 이후, 고종은 일본에 대한 극도의 불신과 공포를 갖게 되었고, 이는 왕권 강화를 통한 체제 수호의 강한 동기로 작용하였다. 1896년 아관파천으로 러시아 공사관에 머문 고종은 국제..

환구단 이야기 2025.08.02

[환구단과 정동 공간사⑤] 정치·외교 분야의 잊힌 인물들

1. 고종의 외교 실험과 정동 외교 지구의 탄생대한제국의 황제 고종은 환구단을 건립한 1897년을 기점으로, 국가 체제를 근대국가로 전환하고자 하는 외교적 시도를 본격화했다. 종묘·사직과 같은 전통적 유교 공간과 달리, 환구단은 명확하게 황제 중심의 제국적 이념을 상징하는 공간이었고, 그 주변 정동은 외국 공사관과 근대 시설들이 집중된 국제 외교 지구로 발전했다. 고종은 이 공간적 밀집성을 활용하여 정치·외교의 핵심 무대로 정동을 전략적으로 활용했으나, 정작 이곳에서 활동한 주요 인물들에 대한 기억은 현재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오늘날 환구단과 정동 일대를 둘러보면, 당시 외교 네트워크를 형성했던 조선·대한제국의 외교관들은 거의 언급되지 않거나 잊힌 상태다.2. 잊힌 외교관: 초대 주미공사 박정양 박정양..

환구단 이야기 2025.07.29

[환구단과 정동 공간사③] 해체와 재기억 –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

1. 일제의 권역 해체 전략: 물리적 해체와 상징의 말살1900년대 이후 일제는 대한제국의 상징 공간을 체계적으로 해체했다. 특히 정동과 환구단 권역은 고종의 정치·외교·문화 전략이 집약된 장소로서 일제의 우선적 통제 대상이 되었다. 일제는 환구단의 원형 제단을 1913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조선호텔을 건립함으로써 제국 통치의 공간을 물리적으로 말살하고, ‘천자국’ 대한제국의 상징을 일상에서 지워냈다. 이는 단순한 개발 사업이라기보다는, 대한제국의 상징적 의례였던 천제 의식을 무력화하고 그 기억을 지우기 위한 의도적 기획이었다. 이와 함께 중명전은 궁내부 소속 공간에서 일본 통감부의 행정 관할로 넘어가며 외교의 전초기지라는 기능을 박탈당했다. 정동교회와 배재학당 등 서양 세력과의 연계 지점 역시 일본의 ..

환구단 이야기 2025.07.27

[환구단과 정동 공간사①] ‘환구단 권역’의 형성과 대한제국기 공간구조

1. 정동, 대한제국의 전략 거점으로 떠오르다대한제국 선포 전후, 고종은 러시아공사관에서 덕수궁으로 돌아와 정동 일대를 새로운 권력의 중심지로 삼았다. 이는 단순한 궁궐의 이동이 아니라, 외교·정치·종교 기능이 복합된 새로운 국가 운영 시스템의 공간 전략이었다. 정동 일대에는 러시아·영국·프랑스·미국 등 열강의 공사관이 밀집해 있었고, 고종은 이들과의 외교 교섭을 통해 일본의 압박을 견제하려 했다. 특히 1897년 환구단의 건립은 단순한 제사 공간 조성을 넘어, 천제(天祭)를 통한 하늘에의 자주 선언하는 상징적 행위였다. 정동과 환구단은 ‘국제 외교전의 최전선’과 ‘제국의 정당성 선언 공간’이라는 복합적 정치 공간을 갖추며 대한제국의 권위와 의지를 집약했다. 환구단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고종의 정치..

환구단 이야기 2025.07.25

[광무개혁과 환구단의 세 시기①] 개혁의 제단 위에 서다

1. 환구단, 제국을 열다: 자주독립의 제천례1897년 10월 12일, 조선의 고종은 한양의 환구단(圜丘壇)에서 천제(天祭)를 집전하고 황제로 즉위하였다. 이는 곧 대한제국의 출범이자, 사대 질서로부터 완전한 이탈을 선언한 상징적 사건이었다. 환구단은 하늘에 제사 지내는 공간으로, '천자(天子)만이 제천할 수 있다'는 동아시아 질서에서 제국의 성립을 선언하는 데 필수적인 장소였다. 조선이 아닌 '대한'이라는 국호, 왕이 아닌 '황제'라는 호칭, 그리고 그 출발점에 놓인 환구단 제천례는 단순한 즉위식이 아니라, 국제사회를 향한 정치적 메시지이자, 내정 개혁의 서막이었다. 환구단에서 올린 제천례는 대한제국이 스스로를 '천명(天命)을 받은 국가'로 선언하는 형식이자, 고종의 정치적 비전을 내외에 과시한 장면이..

환구단 이야기 2025.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