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구단 답사기

‘제국’이라는 말이 낯설었던 사람들 – 언어와 용어 수용의 역사

인포쏙쏙+ 2025. 8. 7. 23:29

1️⃣ 새로운 말들, 낯선 개념 – 용어 변화가 시작되다

1897년 10월 12일, 환구단에서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며 대한제국이 선포되었다. 이로써 정치 체제는 물론이고, 공식 용어 체계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기존에 사용되던 ‘왕’이라는 호칭은 ‘황제’로 대체되었으며, ‘전하’는 ‘폐하’로 바뀌었다. 조선이라는 국호도 대한으로 변경되어 새로운 국가 정체성을 언어로 명확히 표현하려는 시도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명칭 변경을 넘어 대한제국이 자주 독립국임을 천명하는 상징적 의미가 컸다.

관보와 법령, 외교문서 등에서 '황제 폐하의 칙명으로', ;칙령 제○호', '대한제국 황제의 탁지부'와 같은 공식 표현이 빠르게 확산하였다. 갑오개혁을 통해 이미 사용되던 ‘외부’, ‘내부’, ‘탁지부’, ‘군부’, ‘법부’, ‘학부’, ‘농상공부’ 등의 부서 명칭은 대한제국 선포 이후 중추원 관제 개편과 함께 황제 중심의 통치 체제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재정비되었다.

이와 같은 용어 전환은 단순한 단어 교체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정치 질서와 국가 정체성의 언어적 구축이었다. 수도 한양의 관보, 신문, 학교 등 공식 기관에서는 빠르게 새로운 용어가 보급되었으나, 지방 지역의 민중에게는 다소 생소하고 낯선 개념이었다. 당시 지방 하급 관료나 상인, 서민들 사이에서는 기존의 ‘왕’과 ‘황제’, ‘조선’과 ‘대한’이 혼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교육과 군대, 사법 등 공공 영역에서의 표준화가 지속적으로 추진되면서 점차 일상에 새로운 용어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2️⃣ ‘대한’이라는 국호, 어떻게 받아들여졌나

‘대한’이라는 국호는 조선 왕조에서 벗어나 독립 국가로서 자주성을 천명하는 의미를 담았다. 고종은 환구단 즉위식에서 ‘광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선포하며, 명나라의 책봉을 받은 ‘조선’이라는 왕조 명칭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는 황제권을 내외에 공고히 하려는 전략이었으며, 외교 무대에서 자주국임을 강조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 명칭 전환이 사회 전반에 즉각적으로 정착된 것은 아니었다. 일부 신문, 특히 『황성신문』과 『제국신문』 등에서는 ‘대한’과 ‘조선’이라는 명칭이 과도기적으로 혼용되었다. 이는 명칭 전환이 사회 전체에 즉각적으로 일관되게 정착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민간에서는 관습적으로 ‘조선’이라는 용어가 여전히 많이 사용되었다. 

교육 현장에서는 ‘대한제국’ 명칭이 비교적 신속하게 도입되었다. 정부가 교과서 개정과 관보 배포를 통해 체계적인 용어 통일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이런 공적 노력 덕분에 관청, 학교, 군대 등 공식기관에서는 ‘대한’이라는 국호가 빠르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국호 전환은 명령과 제도의 힘으로 강력하게 시행된 정책이었으며, 일상 언어에서의 완전한 정착에는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제국’이라는 말이 낯설었던 사람들 – 언어와 용어 수용의 역사


3️⃣ 언어는 정치다 – 대한제국의 상징적 언어 전략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도구를 넘어서 권력과 질서를 구성하는 핵심 수단이다. 대한제국은 ‘황제’, ‘대한’, ‘칙령’과 같은 용어를 통해 자주 국가로서의 독립성과 권위를 상징화했다. 이들 용어는 법률문서, 교과서, 군사 규율, 조례, 외교문서 등 공식 문헌 전반에 걸쳐 사용되며, 국가 체제의 정당성과 권위를 언어적으로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

이러한 변화는 일본의 메이지 유신 이후 ‘대일본제국’, ‘천황’, ‘칙유’ 등의 용어를 통해 천황 중심 국가를 구축한 사례와 비슷하다. 두 국가는 모두 황제 중심의 절대권력 질서를 강화하기 위해 용어 체계를 새로 만들었으며, 이를 통해 내부 통치와 국제 외교에서 위상을 높이고자 했다. 즉, 새로운 언어는 정치적 변혁의 중요한 축이었으며, 국가 정체성을 재정의하는 수단이었다.

대한제국이 선택한 언어적 상징들은 국민의 정신과 국가의 이미지를 재구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황제’라는 호칭은 중화질서 속 ‘왕’에서 벗어나 독립된 국가의 최고 권위를 나타냈고, ‘대한’이라는 국호는 강력한 국가 정체성 확립을 의미했다. ‘칙령’은 황제권의 직접적 행사와 이를 통한 국가 통치의 상징이었다.


4️⃣ 환구단에서 시작된 언어의 전환 – 상징의 공간과 실천

이러한 언어 전환은 1897년 10월 12일 환구단에서 고종의 황제 즉위식에서 시작되었다. 즉위식은 단순한 정치 행사 이상으로 새로운 국가 언어 질서가 공식적으로 공표된 장이었다. ‘황제’, ‘대한’, ‘광무’, ‘칙명’ 등의 용어가 즉위문과 제천문에 포함되어, 국가 체제 전환의 상징적 언어가 한꺼번에 등장했다.

환구단은 언어를 통해 국가 정체성이 선포된 공간이었다. 이후 관보, 공문서, 외교문서, 교과서, 법률 등에 반복적으로 사용된 이러한 용어들은 환구단에서 시작된 새로운 언어 체계가 대한제국 전역에 확산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말이 체제와 권력을 대표함을 증명하는 동시에, 제국 질서의 상징적 실천이었다.

환구단의 즉위식 이후, 정부는 이러한 새로운 용어를 공공 행정, 교육, 군사 등 국가 운영 전반에 강력히 도입하며 국가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였다. 이로써 언어 변화는 단지 행정적 변화가 아닌, 국민 모두가 체감하는 새로운 정치 현실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용어 전환은 그 자체로 대한제국이 자주독립국가로서 세계 무대에 존재감을 드러내는 핵심 수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