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협회 3

대한제국 선포 이후의 국내 담론 – 지식인과 시민사회의 반응

1. 독립협회, 대한제국 수립을 자주독립의 상징으로 해석하다1897년 10월 고종이 환구단에서 황제로 즉위하고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선언하자, 독립협회는 이를 자주독립 국가 수립의 상징으로 강하게 지지했다. 독립협회는 1896년 창립 이래 『독립신문』을 통해 조선이 청의 제후국 체제를 벗어나 ‘황제 중심의 자주국’으로 전환했음을 반복적으로 전파하였고, 이는 독립협회의 정치·사회적 목표와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독립신문』은 '대한(大韓)'이라는 국호가 고대 삼한의 역사 위에 새로운 자주 정체성을 부여한다고 강조했으며, 황제 즉위는 외교적 독립을 대내외에 천명하는 정치적 선언으로 해석되었다. 단순한 호칭 변경이 아니라, 국가의 주권과 정체성을 새롭게 구축하는 중대한 전환점으로 본 것이다. 특히 이들은 대한제국..

환구단 이야기 2025.08.05

고종은 왜 대한제국을 선포해야 했는가

1. ‘황제 즉위’의 꿈은 언제 시작되었는가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1897년은 조선의 역사에서 가장 중대한 정치적 전환점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제국 선언’은 하루아침에 결정된 것이 아니었다. 그 배경에는 조선 후기의 왕권 약화, 국제 정세의 격동, 그리고 고종 개인의 정치적 이상과 고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고종은 이미 임오군란(1882)과 갑신정변(1884), 갑오개혁(1894~1895) 등을 거치며 외세의 간섭 속에서 왕권의 지속을 고민해 왔다. 특히 1895년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에 의해 시해되는 ‘을미사변’ 이후, 고종은 일본에 대한 극도의 불신과 공포를 갖게 되었고, 이는 왕권 강화를 통한 체제 수호의 강한 동기로 작용하였다. 1896년 아관파천으로 러시아 공사관에 머문 고종은 국제..

환구단 이야기 2025.08.02

환구단과 대한제국의 탄생: 고종 황제는 왜 하늘에 제를 지냈는가?

1. 국제 정세와 조선의 위기19세기 말 동아시아는 거대한 격변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었습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해 근대 국가로 빠르게 변모했고, 1894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동아시아 패권을 차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전통적 중화 질서를 지탱하던 청나라는 아편전쟁 이후 서구 열강에 잇달아 패하며 힘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러시아는 남하 정책으로 한반도와 만주를 새로운 전략 무대로 삼고 있었습니다. 이 복잡한 국제 구도 속에서 조선은 생존의 기로에 놓였습니다. 청의 영향권에서 벗어났지만, 그 자리를 일본이 차지하려 했습니다. 1895년 을미사변에서 명성황후가 일본 세력에 의해 시해된 사건은 조선의 위기를 극명하게 보여준 비극이었습니다.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을 단행했지만, 이..

환구단 이야기 2025.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