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제천 문화

[유럽 제천③] 발트족 태양 제례 — 사울레의 빛으로 세계를 잇다

인포쏙쏙+ 2025. 9. 16. 22:41

1. 서론 — 발트해 연안에서 떠오른 태양 여신

유럽의 북동부, 발트해 남동 연안의 평원지대는 한때 거대한 숲과 늪, 호수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 그리고 옛 동프로이센 일대에 살던 발트족은 이 고요한 풍경 위에서 수천 년 동안 농업과 어로, 목축을 병행하며 살아왔습니다.
고고학 연구에 따르면 이 지역에서는 청동기 후기(기원전 약 1000년경)부터 일출 방향을 향한 무덤과 제단 유구, 원형 태양 문양이 새겨진 청동 원반 등이 반복적으로 발견됩니다. 이는 발트족의 태양 제례 전통이 최소 3천 년 전부터 존재했으며, 이후 중세 13세기 초 기독교화 이전까지 약 2천 년 이상 지속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발트족에게 시간과 생명은 곧 태양의 궤도와 같았고, 그들은 태양의 빛을 세계의 중심으로 여겼습니다.

이 신앙의 심장부에는 '사울레(Saulė)'라는 태양 여신이 자리합니다. 사울레는 발트족 신화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놓인 신이자, 모든 생명의 어머니로 불렸습니다. 그녀는 낮에는 황금 마차를 타고 하늘을 가로지르며 빛과 열을 주고, 밤에는 은빛 배를 타고 지하 세계를 건너 새벽에 다시 떠오른다고 믿었습니다. 이 순환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죽음과 부활, 생명의 재생을 상징했습니다. 사울레는 성실한 이를 축복하고 게으른 이를 벌하며, 세상의 도덕적 질서를 감시하는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대부분의 유럽 문화권에서 태양이 남신으로 설정된 것과 달리, 발트족은 태양을 여성으로 보았고, 달의 신 메네스(Mēness)를 사울레의 남편이자 변덕스러운 존재로 그렸습니다. 태양=여성, 돌봄과 정의라는 이 독특한 세계관이 발트족 제천문화 전체를 지배했습니다.

따라서 발트족의 태양 제례는 단순한 자연 숭배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매년 여름, 공동체 전체가 사울레의 귀환을 맞아 그녀의 힘을 다시 불러들이고, 그 빛을 함께 나누며 세계의 질서를 회복하는 거대한 연례 의식이었습니다. 하지 무렵의 이 축제는 오늘날까지도 '야니(Jāņi, 라트비아)' 혹은 '라소스(Rasos, 리투아니아)'라는 이름으로 이어지며,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제천 전통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2. 태양을 맞이하는 밤 — 불과 꽃, 노래의 의례

하지 제례는 한밤중부터 시작됩니다. 축제가 가까워지면 마을 사람들은 며칠 전부터 들판과 숲에서 약초와 들꽃을 모아 남성용 참나무잎 화관과 여성용 꽃 화관을 만듭니다. 이는 각각 힘(남성)과 다산(여성)을 상징하며, 모두가 같은 상징물을 머리에 쓰는 행위는 공동체가 사울레의 자녀로 하나가 됨을 나타냈습니다. 젖과 꿀, 치즈, 맥주가 준비되고, 모닥불이 언덕 위에서 타오르기 시작합니다. 불은 사울레의 빛을 지상에 옮겨놓은 것으로 여겨졌고, 사람들은 모닥불 위를 뛰어넘으며 악운과 질병을 태워 없앴습니다.

밤이 깊어지면, 젊은이들이 둘씩 짝을 지어 숲과 들을 돌며 '야니 노래(Jāņu dziesmas)'를 부릅니다. 노래는 끝없이 반복되며, 때로는 서로에게 즉흥적으로 농담과 찬사를 던지기도 합니다. 이는 사울레가 모든 생명을 돌보듯, 사람들끼리 서로의 삶을 축복하는 상징적 행위였습니다. 자정 무렵에는 불씨를 집으로 가져가 가정의 화로에 옮기는데, 이는 사울레의 빛을 집안에 들인다는 의미였습니다. 이때 젖과 빵, 꿀을 모닥불 곁 제단에 바치며 동물 희생 없이 유제품·곡물 중심의 봉헌을 올렸습니다. 발트족 제천이 다른 유럽 제천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바로 여기서 드러납니다 — 그들은 피가 아닌 빛과 생명을 바쳤습니다.

새벽이 밝아오면 마을 전체가 동쪽 언덕으로 행렬을 지어 올라가, 해돋이를 맞이하며 사울레의 귀환을 환영했습니다. 이 순간 사람들은 손에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춤을 추었고, 사울레의 빛이 다시 세상을 움직이기 시작했음을 선포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해돋이 직전 강이나 호수에 들어가 목욕을 하며 새해의 건강과 정화를 기원했는데, 이는 불과 물이라는 정화의 이중 상징을 모두 활용한 독창적인 의례였습니다.

 

3. 사울레의 질서 — 태양이 만든 사회

사울레는 단지 생명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 사회 질서의 근거로 여겨졌습니다. 그녀는 성실한 이를 축복하고, 게으르거나 부정한 이를 벌한다고 믿어졌습니다. 이 믿음은 발트족 사회의 가치 체계를 형성했습니다. 결혼식에서는 신부가 사울레의 축복을 받기를 기원하며 들판에서 해돋이를 맞았고, 출산 후에는 산모와 아이에게 사울레의 햇볕을 쬐게 하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농부들은 씨를 뿌리기 전 곡물과 꿀을 사울레에게 바쳤고, 첫 수확물도 그녀에게 먼저 봉헌한 뒤에야 먹었습니다.

이처럼 사울레는 생명과 도덕, 시간과 계절을 동시에 관장하는 존재였습니다. 이는 대부분의 유럽 고대 종교에서 볼 수 없는 구조입니다. 게르만의 토르나 슬라브의 페룬이 폭풍과 무력의 신이었던 것과 달리, 사울레는 폭력이 아니라 돌봄과 규율을 통해 세계를 다스렸습니다. 이 때문에 발트족의 지도자(추장)는 전쟁영웅이기보다 풍요와 질서를 지키는 수호자로 이상화되었고, 통치권 역시 사울레의 축복을 받았다는 주장 위에 세워졌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발트족이 인도유럽 문화권에 속하면서도 태양을 여성, 달을 남성으로 설정했다는 사실입니다. 메네스(Mēness)는 사울레의 남편 또는 연인으로 등장하지만, 불성실한 행동을 하여 사울레에게 벌을 받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는 정의롭고 성실한 여성적 태양 / 변덕스럽고 충동적인 남성적 달이라는 상징 구도를 만들어냈고, 그 결과 여성적 생명력과 돌봄이 발트족 사회의 중심 가치가 되었습니다. 이 역시 발트 태양 제천의 독창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대목입니다.

 

4. 기독교화 이후의 변형과 오늘날의 계승

13세기 초중반, 덴마크 왕권과 리보니아 기사단·튜톤 기사단이 북방 십자군을 전개하면서 발트해 연안은 급속히 기독교화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교 사원은 파괴되고 태양 숭배 의례가 금지되었으며, 제사장들은 처형되거나 추방되었습니다. 중세 기독교 연대기에는 발트인들이 전쟁이나 위기 상황에서 사람을 바쳤다는 기록도 드물게 보이지만, 이는 선사~중세 초기의 국지적·예외적 제의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며, 하지 중심의 태양 제례에서는 그러한 흔적이 확인되지 않습니다. 하지 축제 자체는 지하로 스며들어 민속·성인축일(성 요한절)과 결합한 형태로 살아남았습니다.

근대 민족주의 시대에 이 전통은 ‘민족의 뿌리’로 재발견되었고, 20세기 이후 라트비아의 Līgo/Jāņi(6월 23~24일), 리투아니아의 Joninės/Rasos(6월 24일)가 국가 공휴일로 자리 잡으며 공식적으로 계승되었습니다. 오늘날 야니와 라사는 유네스코에 별도 등재된 항목은 아니지만, 발트 3국이 공동으로 이어온 ‘노래와 춤 축제’ 전통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하지 전날 밤 모닥불을 피우고 화관을 쓰며 밤새 노래하고 춤추는 풍경은 여전히 발트 전역을 수놓습니다. 수천 년 전의 제천 구조가 실질 참여 축제로 지속되는, 유럽에서도 보기 드문 예입니다.

[유럽 제천③] 발트족 태양 제례 — 사울레의 빛으로 세계를 잇다

 

5. 결론 및 나의 의견 — 피가 아닌 빛으로 세계를 잇다

발트족의 태양 제례는 유럽 제천문화사에서 매우 독창적인 위치를 차지합니다. 대부분의 유럽 고대 제천이 피와 희생, 전쟁과 왕권의 논리로 짜여 있었다면, 발트족은 그 반대편에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태양을 정복의 신이 아닌 돌봄과 생명의 여신으로 보았고, 불과 꽃, 우유와 꿀, 노래와 춤으로 그녀를 맞이했습니다. 이는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게 만드는 의례였고, 바로 그 점이 발트 제천의 가장 큰 차별성입니다.

저는 이 전통이 오늘날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현대 사회는 생산성과 경쟁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며, 서로를 돌보기보다 앞서기 위해 분투합니다. 하지만 발트족의 태양 제례는 정반대의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를 살게 하는 힘은 무엇이며, 우리는 그 힘을 어떻게 함께 나눌 것인가.”

수천 년 전 발트해의 평원에서 사람들은 사울레의 빛을 함께 맞이하며 이 질문에 답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그 빛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발트족의 태양 제례를 단순한 옛 신앙이 아니라, 세계와 공동체를 잇는 생명의 언어로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