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누마 엘리시 2

[해석 칼럼①] 선사와 고대 제천, 왜 인류는 하늘을 필요로 했는가

1. 왜 불확실성의 시대에 의례는 ‘기술’이 되었을까요?선사와 고대는 통제할 수 없는 위험의 연속이었습니다. 비와 범람, 가뭄과 한파, 전염병과 전쟁,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죽음까지. 생존을 위협하는 사건은 끊임없이 반복되었고, 그 원인을 미리 알거나 대비할 수 있는 방법은 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그 시대의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지식이 아니라, 두려움을 견디고 공동체를 유지할 방법이었습니다. 의례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신앙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심리적 기술로 기능했습니다. 첫째, 의례는 불확실성의 비용을 분담하게 했습니다. 동원과 희생이 큰 의례일수록 참여자 간의 신뢰와 약속이 검증됩니다. 인류학에서는 이를 ‘고비용 신호(costly signaling)’라고 설명합니다. 많은 자원과 시간을 들여 ..

[고대 문명과 제천①] 메소포타미아 아키투 축제 – 신년과 우주 재창조

1. 아키투의 기원과 의미 – 혼돈의 땅에서 태어난 신년제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에서 거행된 아키투(Akitu) 축제는 단순한 연례 종교행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새해를 맞아 우주의 질서를 다시 세우고, 인간 사회의 권위를 재승인받는 거대한 제천 의례였습니다. ‘아키투’라는 명칭은 수메르어 'a-ki-ti'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곡식, 특히 보리의 파종과 관련이 있습니다. 즉, 농경 주기와 직결된 신년제였던 셈입니다.바빌로니아 역법에서 아키투는 니산월(히브리력으로 1월을 뜻함), 즉 오늘날 달력으로 3월 말에서 4월 초에 해당하는 시기에 거행되었습니다. 이는 겨울이 지나고 봄이 시작되는 전환기이자, 보리가 움트는 시기였습니다. 농업에 생존을 의지하던 고대인들에게 신년은 단순히 달력상의 출발이 아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