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신궁 3

[환구단과 정동 공간사③] 해체와 재기억 –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

1. 일제의 권역 해체 전략: 물리적 해체와 상징의 말살1900년대 이후 일제는 대한제국의 상징 공간을 체계적으로 해체했다. 특히 정동과 환구단 권역은 고종의 정치·외교·문화 전략이 집약된 장소로서 일제의 우선적 통제 대상이 되었다. 일제는 환구단 천단을 1913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조선호텔을 건립함으로써 제국 통치의 공간을 물리적으로 말살하고, ‘천자국’ 대한제국의 상징을 일상에서 지워냈다. 이는 단순한 개발 사업이라기보다는, 대한제국의 상징적 의례였던 천제 의식을 무력화하고 그 기억을 지우기 위한 의도적 기획이었다. 이와 함께 중명전은 궁내부 소속 공간에서 일본 통감부의 행정 관할로 넘어가며 외교의 전초기지라는 기능을 박탈당했다. 정동교회와 배재학당 등 서양 세력과의 연계 지점 역시 일본의 감시 체..

[환구단과 조선신궁②] 해방 이후의 공간 정치: 식민의 흔적과 기억의 재편

1️⃣ 광복 후 남겨진 공간들: 해방과 환구단의 침묵 1945년 8월 15일, 조선이 광복을 맞이한 이후 서울 도심 곳곳에는 여전히 일제강점기의 유산이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환구단과 조선신궁은 각각 대한제국의 출범과 일본 제국의 식민지 통치라는 상이한 정체성을 지닌 공간이었기에, 해방 이후 이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는 단순한 공간 정비의 문제를 넘어 새로운 국가 정체성과 기억 체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에 대한 과제를 안겼다.일제의 상징이었던 조선총독부 청사는 광복 후 미군정의 주요 행정기관으로 사용되면서 즉각적인 철거 없이 존치되었고, 그 외곽에 자리했던 제의 공간들 또한 빨리 역사적 위상을 회복하거나 재해석되지 못한 채 모호한 공백 상태로 남게 되었다.환구단은 이미 일제강점기 동안 대부분의 원형이 ..

환구단 답사기 2025.07.24

[환구단과 조선신궁①] 제국과 식민의 제례 공간, 두 얼굴의 상징성

1️⃣ 제국의례의 공간화: 환구단의 창건과 정치적 상징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조성된 환구단은 단순한 제사 장소를 넘어선 정치 상징이었다. 고종은 이곳에서 제왕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전통을 계승한 환구제(圜丘祭, 또는 원구제)를 봉행했다. 이는 유교적 예제의 계승이자, 자주적 황제국으로서의 정치적 정당성을 천명한 행동이었다. 환구단은 단순히 하늘에 제를 올리는 공간이 아니라, 대한제국이 명실상부한 독립 제국임을 대내외에 알리는 정치 무대였다. 환구단 경내에는 상제를 모신 황궁우가 있고, 그 앞 원형 제단에서 황제가 제를 올렸다. 이 구조는 고대 중국의 천단을 모방한 형태로, 황제가 상제를 향해 직접 제를 올리는 형식을 취했다. 이는 천자의 자격을 갖춘 통치자로서 고종 자신을 상징화한 것이..

환구단 답사기 2025.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