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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개혁과 환구단의 세 시기③] 제국 쇠퇴기, 환구단의 그림자

1️⃣ 러일전쟁과 외세의 격돌: 조선반도의 지정학적 재앙1904년 2월, 러일전쟁이 발발하면서 대한제국은 다시 한번 열강의 각축장 한가운데로 내몰렸다. 일본은 전쟁의 전초로 조선을 선점하려 했고, 러시아는 만주와 조선을 연계하는 전략적 요충지를 확보하려 했다. 이러한 대립 속에서 대한제국은 중립을 선언했지만, 일본은 이를 무시하고 조선 내 군사 점령을 감행했다. 1904년 2월 23일 체결된 ‘한일의정서’는 조약의 외형을 취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일본이 대한제국 영토에서 자유롭게 군사작전을 펼칠 수 있도록 한 조치로, 대한제국의 영토 주권을 침해하는 조약이었다. 조선은 선택권 없이 이 조약에 서명해야 했고, 이는 외교권 박탈로 이어지는 을사늑약의 전단계가 되었다. 환구단에서 천명한 자주독립의 이상은 국..

환구단 답사기 2025.07.22

[광무개혁과 환구단의 세 시기②] 제국의 실험과 현실의 마찰

1️⃣ 황제권의 제도화: 교서, 칙령, 그리고 법제 정비1899년은 광무개혁이 선언적 단계를 넘어 실제 제도화 단계로 접어든 해였다. 환구단에서 시작된 대한제국의 천명은 이제 문서와 법령, 그리고 기관의 형태로 구체화하였다. 고종은 황제권 강화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황제의 뜻을 직접 반영한 교서(敎書)와 칙령(勅令)의 발포를 정례화하였고, 이를 통해 입법과 행정에 대한 황제의 직접 통치를 공고히 하고자 했다. 이는 전통적인 유교 군주제에서 벗어나 황제를 국가 권력의 중심으로 두려는 명확한 변화였다. 특히 1899년 8월 공포된 『대한국국제(大韓國國制)』는 황제권 절대주의를 명문화한 헌법적 문서였다. "대한국은 세계에 공인된 자주독립국이며, 대한제국 황제는 무한한 군권을 가진다"는 이 문서는 황제의..

환구단 답사기 2025.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