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에서 제천의례는 단순히 농사의 풍요를 빌던 행사에 그치지 않고 국가의 질서를 재확인하고 왕권의 신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정치·문화적 의식이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고대 한민족의 대표적인 제천의례인 '고구려의 동맹(東盟)'과 '신라의 팔관회(八關會)'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두 의식은 모두 음력 10월 무렵 수확이 끝난 시기에 거행되었고, 공동체 구성원이 모여 조상과 하늘에 제사를 올리며 가무와 연회를 즐기는 행사를 중심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단, 동맹은 부족 국가 단계에서 건국신과 천신을 함께 모신 집단적 추수 감사제라는 성격이 강했지만, 팔관회는 불교가 도입된 뒤 불교의 팔계재(八戒齋)와 고구려 동맹 전통이 결합한 국가적 의례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1. 고구려의 동맹 – 공동체를 결속시킨 추수 감사제
동맹제는 고구려 사람들에게 농사가 끝나는 10월에 열리는 가장 큰 연례행사였습니다. 중국 사서에는 “고구려는 10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큰 모임을 가지니 이를 동맹이라고 한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각 부족의 대표들이 모여 국가 대사를 논의하고, 건국 시조인 동명신(주몽)과 물의 여신 유화를 함께 제사하는 의식으로, 제천과 정치적 회의가 결합한 형태였습니다. 제사 후에는 남녀가 밤새 모여 노래와 춤을 즐기며 추수의 노고를 풀었고, 공동체는 이러한 의식을 통해 농경 사회의 풍요에 대한 감사와 조상 숭배를 확인했습니다.
동맹의 가장 큰 특징은 초국가적 성격입니다. 왕과 신료, 각 부족의 대표가 모여 국정을 논의하는 공회(公會)가 함께 열렸다는 점에서 단순한 종교 행위를 넘어 정치적 합의체의 기능을 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동맹제가 단순 제천 행사에 머물지 않고 ‘고구려 국중대회’와 같은 성격을 지닌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구조는 후대에 고려나 조선의 팔관회로 이어졌으며, 국가와 사회를 하나로 묶어주는 공동체 축제의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동맹은 시간이 흐르면서 국가적 질서를 재확인하는 상징적 공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각 부족의 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국정과 정책을 상의하는 과정에서 왕권의 권위가 확인되었고, 건국신을 모시는 제사를 통해 국왕의 신성성도 강조되었습니다. 이러한 제천 의식을 통해 하늘·조상·왕권·백성이 하나의 질서 속에 묶이는 구조가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신라의 팔관회 – 불교와 토착 제천의 융합
팔관회는 불교가 한국에 전해 내려오면서 도입된 팔계재가 토착 제천의례와 결합하여 만들어진 행사입니다. 우리역사넷에 따르면 팔관회의 기원은 인도 불교의 팔계재가 중국을 거쳐 신라에 전해졌으며, 551년 신라 진흥왕 때 고구려 승려 혜량이 신라에 팔관회를 전했다고 합니다. 즉, 신라는 법흥왕 때 불교를 공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팔관회를 받아들였고, 팔관회의 설행을 통해 불교적 위령제와 고구려 10월 동맹의 추수 감사 의식이 결합하는 독특한 형태가 만들어졌습니다.
신라의 팔관회는 왕실 중심의 행사였지만 화랑도(花郞徒)가 의식 주체로 참여하여 청년층의 조직력과 미적 감각을 보여주는 공연을 펼쳤습니다. 의례에서는 '사선악부(四仙樂部)'라는 악대가 백희와 가무를 올리고, 용과 봉황, 코끼리와 말 모양을 장식한 화려한 수레와 무대가 동원되었습니다. 이러한 장식과 공연은 천신과 조상신뿐만 아니라 만물의 신령까지 위로하고 축복을 빌기 위한 종합 예술 행사였습니다. 신라 팔관회는 불교적 색채가 짙지만, 고구려 유민들이 10월 동맹의 전통을 팔관회 속에 간직하고 위령제로 활용했다는 기록도 전합니다. 이처럼 팔관회는 국가를 넘어 다양한 집단의 정체성과 결속을 유지하는 장치가 되었습니다.
팔관회의 의식은 시간이 흐르면서 경주를 넘어 다른 지역으로도 전파되었습니다. 후삼국 시기 궁예가 왕을 자칭하며 송악에서 팔관회를 개최한 것은 왕권을 선포하고 주민들의 공동체 의식을 고양하기 위한 전략이었습니다. 고려시대에 들어서면서 팔관회는 연등회와 함께 국가 의례로 자리매김하며 불교의 대규모 축제로 전환되었습니다. 그러나 조선 초기에는 “도교적 요소와 사치스러운 비용이 많다”는 이유로 폐지되었고, 이후 쇠락하여 현대에 이르러서는 일부 문화재 복원 행사나 재현 공연으로 간헐적으로만 이어지고 있습니다.
3. 동맹과 팔관회의 공통점과 차이점
동맹과 팔관회는 모두 추수감사제적인 성격을 지니며 음력 10월에 거행되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늘과 조상에게 감사하고 공동체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의식과 더불어 가무·연회·놀이를 통해 축제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점도 비슷합니다. 그러나 두 의식은 형성과 발전 배경, 주체, 종교적 색채에서 여러 차이를 보입니다.
형성 배경: 동맹은 고구려의 건국신과 수신(물의 여신)에 대한 제사에서 기원하며 정치 회의와 결합한 토착적 농경 제의였습니다. 반면 팔관회는 인도 불교의 팔계재가 중국을 거쳐 신라에 전해진 뒤 토착 제천과 결합한 불교적 의례입니다.
주체와 성격: 동맹에서는 각 부족의 대표와 왕, 신료들이 모여 국정 회의를 겸한 의식을 했습니다. 팔관회는 신라 왕실·화랑·불교 승려가 주도했으며, 고려 이후에는 국가 차원의 종교 축제로 발전했습니다.
종교적 색채: 동맹은 하늘·조상신 숭배를 중심으로 한 애니미즘적 의식입니다. 팔관회는 불교의 팔계재와 고구려 동맹의 추수 감사제가 결합하여, 불교적 위령제와 민속적 제천을 포괄하는 복합 의례로 변모했습니다.
4. 현대적 의미와 환구단과의 연결
환구단에서 거행되던 제천의례와 비교해 볼 때, 고구려의 동맹과 신라·고려의 팔관회는 민간 공동체의 참여와 농경 사회의 주기성을 더 강하게 반영합니다. 환구단 천제는 왕이 하늘에 직접 제사를 올리는 국가 의례였고, 왕권의 정당성을 천명하는 정치적 의식이었습니다. 반면 동맹과 팔관회는 왕과 백성이 함께 어우러지는 축제로서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여 공동체의 결속과 위로를 도모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세 의식 모두 국가의 질서를 정립하고, 천신과 조상을 숭배하며, 왕권과 공동체의 정당성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서로 연결됩니다. 특히 팔관회는 고구려 동맹의 전통을 이어받아 고려와 조선 초기까지 지속되었고, 환구단 천제처럼 왕권의 신성화와 국가의 권위를 드높이는 역할을 했습니다. 20세기 이후 팔관회는 거의 사라졌지만, 일부 지역과 불교계에서 복원 행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문화재 공연으로 재현되어 우리의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되살리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동맹과 팔관회는 단순한 옛 의식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공동체적 가치와 종교적 다양성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입니다. 이러한 제천의례를 이해하는 것은 환구단 천제뿐만 아니라 고대와 중세를 연결하는 제례 문화의 연속성을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또한 현대 사회에서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고 전통문화를 계승할 방안을 찾는 데 중요한 힌트를 제공합니다.
여기에 더해 팔관회에서 사용하던 화려한 수레와 동물 모양의 모형들은 당시 사람들의 상상력과 장인 정신을 엿볼 수 있게 해 줍니다. 용과 봉황, 코끼리와 말 등을 형상화한 조각과 행렬은 단순한 놀이를 넘어 자연과 인간, 신령 사이의 조화를 상징하는 장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일부 지역 축제에서 유사한 모형과 탈놀이를 볼 수 있는데, 이는 팔관회의 미학적 전통이 살아 있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남아 있는 요소들을 발굴하고 현대적으로 해석해 나가는 과정이 우리의 제례 문화를 더욱 풍부하게 할 것입니다.
'환구단 답사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환구단과 우리나라 제천의례③] 동예의 무천과 삼한의 수릿날, 계절제 (4) | 2025.08.17 |
---|---|
[환구단과 우리나라 제천의례②] 고조선과 부여의 영고 (9) | 2025.08.16 |
[환구단과 우리나라 제천의례①] 고대부터 근현대까지 제천의례 개관 (11) | 2025.08.15 |
소공동의 오늘과 숨은 보석 (6) | 2025.08.14 |
근현대 소공동: 호텔과 상권의 이야기 (11) | 2025.08.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