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제 2

환구단만이 아니었다: 조선·대한제국의 제례 공간 확장과 그 유산

1. 원구단과 천제 — 하늘에 제를 올리는 전통의 기원환구단을 이야기하면 흔히 1897년만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군주가 하늘에 제를 올려 통치의 정당성을 확인한다는 관념은 동아시아 제왕정 전통의 깊은 뿌리에서 올라옵니다. 저는 이 기원을 짚어야만 환구단의 의미가 단절된 사건이 아니라 연속의 결절점이었음을 설명할 수 있다고 봅니다. 중국 고대 이래 천자만이 거행할 수 있던 '천제(祭天)'는 유교 국가에서 최고 등급의 국가 의례로 간주하였습니다. 조선은 명·청과의 외교 질서(책봉 체제)에 편입된 왕국이었기에 정례적 천제를 제도화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하늘과의 교감’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국난·대기근·역병과 같은 비상시에 임시로 하늘에 제를 올리거나, 기우·기곡과 같은 예외적 의례를 통해 왕..

환구단 이야기 2025.07.18

환구단과 대한제국의 탄생: 고종 황제는 왜 하늘에 제를 지냈는가?

1. 국제 정세와 조선의 위기19세기 말 동아시아는 거대한 격변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었습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해 근대 국가로 빠르게 변모했고, 1894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동아시아 패권을 차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전통적 중화 질서를 지탱하던 청나라는 아편전쟁 이후 서구 열강에 잇달아 패하며 힘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러시아는 남하 정책으로 한반도와 만주를 새로운 전략 무대로 삼고 있었습니다. 이 복잡한 국제 구도 속에서 조선은 생존의 기로에 놓였습니다. 청의 영향권에서 벗어났지만, 그 자리를 일본이 차지하려 했습니다. 1895년 을미사변에서 명성황후가 일본 세력에 의해 시해된 사건은 조선의 위기를 극명하게 보여준 비극이었습니다.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을 단행했지만, 이..

환구단 이야기 2025.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