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제천 문화

[선사 제천] 괴베클리 테페 – 인류 최초의 성소

인포쏙쏙+ 2025. 9. 1. 23:55

1. 선사 시대에서 발견된 의외의 유적

괴베클리 테페(Göbekli Tepe)는 오늘날 터키 남동부, 유프라테스 강 인근의 언덕에서 발굴된 거대한 선사 시대 유적입니다. 독일 고고학자 클라우스 슈미트(Klaus Schmidt)가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를 진행하면서 세상에 알려졌으며, 발굴 초기부터 '인류 역사 서술을 바꾼 유적'으로 평가받았습니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연대입니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에 따르면 괴베클리 테페는 기원전 약 9600년경, 즉 지금으로부터 1만 년 이상 전의 건축물입니다. 이는 농경과 도시 문명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훨씬 이전, 아직 수렵·채집 사회가 중심이던 시기에 세워졌다는 뜻입니다. 인류가 농경을 통해 잉여 생산을 확보해야만 거대한 제례 공간을 건설할 수 있다는 기존 통념을 무너뜨린 사건이었습니다.

저는 이 지점을 괴베클리 테페의 역사적 의미로 봅니다. 고고학자들은 흔히 “종교가 문명을 만든 것인가, 문명이 종교를 만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왔습니다. 괴베클리 테페는 이 질문에 강력한 반례를 제시했습니다. 농경보다 먼저 제례 공간이 세워졌고, 집단 노동이 동원되었으며, 이를 통해 공동체가 조직화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신을 위한 성소가 인류 최초의 사회적 결속 장치였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선사 제천] 괴베클리 테페 – 인류 최초의 성소

 

2. T자형 석주의 의미 – 신과 동물의 상징 언어

괴베클리 테페의 가장 인상적인 특징은 지름 10~20m에 이르는 원형 구조물과 그 안에 세워진 거대한 T자형 석주들입니다. 석주의 높이는 최대 5.5m, 무게는 10톤이 넘습니다. 놀라운 점은 당시에는 금속 도구나 수레조차 발명되지 않은 시기였다는 사실입니다. 수백 명이 협력하여 돌을 채석하고 옮겨 세웠을 가능성이 큽니다.

석주에는 사자, 멧돼지, 여우, 독수리, 뱀 같은 다양한 동물들이 부조로 새겨져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신앙과 우주관을 드러내는 상징 언어로 해석됩니다. 일부 학자들은 동물들이 ‘토템’ 역할을 했다고 보며, 또 다른 연구자들은 별자리나 천체 현상을 나타낸 것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중앙에 위치한 두 개의 거대한 석주는 다른 석주들과 달리 사람의 팔과 손 모양이 새겨져 있어, 인격화된 신적 존재를 상징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두 석주는 마치 제단의 주신(主神)을 상징하는 기둥처럼 공간의 중심을 장악합니다.

저는 이 석주들을 단순한 조각품이 아니라 ‘신과 인간 사이의 매개체’로 봅니다. 당시 사람들은 글자를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돌과 상징을 통해 자신들의 세계관을 표현했습니다. 괴베클리 테페의 석주는 인류가 남긴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상징체계 건축물 중 하나이며, 제천 의례가 단순한 제사 행위가 아니라 집단적 상징 창출 과정이었음을 보여줍니다.

 

3. 제례와 공동체 – 농경보다 먼저 온 성소

괴베클리 테페의 성격을 둘러싼 논쟁은 치열합니다. 어떤 학자들은 여기서 실제로 거주 흔적이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생활 공간이 아닌 순수 제례 공간이라고 봅니다. 음식물 흔적과 제물의 뼈들이 발견되었지만, 가옥이나 농경 흔적은 드뭅니다.

이는 곧 괴베클리 테페가 특정 집단의 주거지가 아니라, 넓은 지역의 사람들이 모여 주기적으로 제천 의례를 거행한 성소였음을 시사합니다. 사냥감의 성공, 계절 변화,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식이 이곳에서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흥미로운 점은, 괴베클리 테페가 농경 혁명보다 앞섰다는 사실입니다. 일반적으로 인류학은 농경이 먼저 정착하고, 잉여 생산이 늘어나야 제례와 종교가 제도화된다고 설명해 왔습니다. 그러나 괴베클리 테페는 그 반대를 보여줍니다. 거대한 성소를 짓기 위해 집단 노동과 조직력이 필요했고, 오히려 이런 의례적 요구가 농경과 정착으로 이어졌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괴베클리 테페의 가장 혁명적 의미를 봅니다. 종교와 제례가 문명 발생의 기반이 되었다는 가능성의 해석은 우리에게 낯설지만, 고고학 증거는 이를 강력히 지지합니다. 신을 향한 염원이 인류 최초의 집단 노동을 이끌었고, 이는 곧 사회적 조직과 농경의 기반을 마련한 것입니다.

 

4. 세계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와 보존 과제

괴베클리 테페는 201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명확합니다. 이곳은 인류가 남긴 가장 오래된 성소이며, 종교·예술·건축·사회 조직의 기원을 보여주는 유일한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유네스코는 괴베클리 테페를 '인류가 수렵·채집 단계에서 이미 복잡한 상징체계와 제례 문화를 형성했음을 보여주는 탁월한 증거'로 평가했습니다. 이는 곧 인류 정신사의 출발점으로서의 가치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보존 과제도 만만치 않습니다. 유적은 수천 년 동안 흙에 묻혀 있다가 발굴되었기 때문에, 기후 변화와 관광객 유입으로 훼손 위험이 큽니다. 튀르키예 정부는 보호 차원에서 거대한 지붕을 씌우고 관리 체계를 강화했지만, 여전히 유적 보존은 국제적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오늘날 인류가 지닌 책임을 봅니다. 괴베클리 테페는 특정 국가의 유산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뿌리를 증언하는 공공재입니다. 따라서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인류학적 성찰과 보존의 장으로 인식되어야 합니다.

 

5. 인류가 던진 첫 질문 – 왜 하늘로 건축을 올렸는가

괴베클리 테페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왜 인류는 여전히 농경도 정착도 본격화되지 않은 시기에, 막대한 노동력과 자원을 동원해 거대한 성소를 세웠을까요? 당시 사람들에게는 먹고사는 생존이 더 시급했을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을 다듬고 수백 명이 협력해야 하는 건축을 감행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실용적 필요 때문이 아니라, 하늘과 신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인간의 근원적 열망이 작동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질문은 괴베클리 테페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수메르의 지구라트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인공의 산으로, 도시와 신을 결속시켰습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파라오의 영혼을 영원히 하늘로 인도하는 매개체였습니다. 마야와 잉카의 계단식 피라미드는 태양과 천문 주기를 따라 제례가 이루어진 무대였고, 중국의 천단은 천자(天子)의 천제(天祭) 공간이었으며, 조선의 환구단은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올림으로써 주권을 천명한 장소였습니다. 괴베클리 테페는 이 모든 제천 건축의 먼 원형으로서, “인류가 왜 하늘로 건축을 올리는가”라는 질문을 최초로 가시화한 장소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괴베클리 테페를 단순히 ‘가장 오래된 유적’이라고 부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곳은 인류가 집단적으로 초월적 존재와 관계를 맺고자 했던 최초의 실험이자, 종교가 문명 형성에 기여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세우는 국회의사당, 기념탑, 올림픽 경기장, 초고층 빌딩도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공동체의 권위와 정체성을 ‘하늘 높이’ 드러내는 장치입니다. 이는 곧 인류가 수만 년 전부터 이어온 동일한 질문,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무엇을 위해 모이는가?”에 대한 응답의 연속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괴베클리 테페는 단순히 과거의 돌무더기가 아니라, 지금도 살아 있는 상징입니다. 그곳은 인류가 처음으로 하늘을 향해 건축을 올려 세우며 공동체적 정체성을 확인한 현장이었고, 오늘날까지도 '신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공동체의 의미'에 대해 우리에게 사유를 요구하는 보편적 질문의 출발점으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