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 선포 이후의 공간 변화 : 시각적·행정적 재편
1️⃣ 환구단, 공간 전환의 기점이 되다
1897년 10월 환구단에서 대한제국의 수립이 공식적으로 선포되면서, 단순한 정치 체제의 변화만이 아니라 국가의 공간 질서에도 중대한 전환이 일어났다. 환구단은 그 자체로 ‘천제(天祭)’를 통해 하늘의 뜻을 받들어 황제가 통치 정당성을 부여받는 장소로 기능했다. 즉위식과 제천의식이 함께 거행된 이 공간은 기존 유교적 제례 체계와는 명백히 구분되는 제국적 공간으로 재해석되었다. 그동안 종묘와 사직, 문묘 등 유교적 정치 질서의 공간이 조선 왕조의 통치 이념을 상징했다면, 환구단은 황제국 체제의 정통성과 우주적 권위를 상징하는 새로운 축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후 환구단은 제례 공간으로서 반복적으로 사용되며, 황제의 권위가 시공간적으로 드러나는 상징적 무대로 자리 잡았다. 특히 환구단 북쪽에 1899년 완공된 황궁우와, 1902년 고종 즉위 40주년 기념으로 세워진 석고는 환구단이 단발적 의식 장소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정치적 상징 기능을 수행한 공간임을 보여준다. 이는 곧 환구단이 제국 체제의 ‘출발점’이자, 근대 국가로의 공간 질서 전환이 시작된 장소였음을 의미한다. 이 같은 공간적 변환은 환구단이 단순한 종교의례의 장소가 아닌, 체제 변화를 시각화하는 상징적 무대로 기능했음을 드러낸다.
2️⃣ 도성의 시각적 변화 : 새로운 상징과 건축의 등장
대한제국 수립 이후, 서울 도성은 그 공간 구성과 시각적 요소에서 중요한 변화를 맞이했다. 먼저 황제의 권위를 시각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뤄졌다. 경운궁은 대한제국의 황제가 거처하는 공식 궁궐로 격상되었으며, 이후 고종이 퇴위한 1907년에 ‘덕수궁’이라는 이름으로 공식 변경되었다. 특히 1900년 착공되어 1910년에 완공된 석조전(石造殿)은 서양식 건축 양식을 채택한 대표적인 황궁 건축물로, 단순한 궁궐 양식의 변화가 아니라 대한제국이 서구 열강과 대등한 근대 국가임을 시각적으로 과시하려는 상징 행위였다.
또한 궁궐의 공간 배치 역시 제국 중심 체제로 조정되었다. 환구단에서 황제 즉위식이 거행된 직후, 고종은 경운궁에서 환구단까지 태극기 선두의 어가행렬을 진행함으로써 시각적 상징을 강조했다. 이를 통해 제국 체제의 정당성과 황제 중심 권위가 시공간적으로 드러났다.
이 밖에도 황제에 대한 공식 호칭은 기존의 ‘전하(殿下)’에서 ‘폐하(陛下)’로 전환되며, 관청 문서 및 의례 상황에서 ‘폐하’라는 호칭이 공식적으로 자리 잡았다. 관복과 군복도 대한제국 상징 요소, 특히 오얏꽃 문양과 황제 위계질서를 반영한 디자인으로 개편되었으며, 관제와 의례 격식 또한 황제 중심의 제국 체제로 재구성되었다.
3️⃣ 행정 체계와 기호 질서의 재편
환구단에서 시작된 황제국 체제는 단지 공간 구조에 그치지 않고, 행정 체계와 국가 기호 체계 전반을 포괄하는 재편을 동반했다. 가장 핵심적인 변화는 관제 개편이었다. 1898년 시행된 대한제국의 관제 개혁은 내각 중심의 의정부 체제를 황제 직속의 정무기구인 ‘중추원’과 ‘각부’ 체계로 바꾸는 과정이었다. 중추원은 황제의 자문기관 및 정무기구 역할을 하였으며, 각부는 재무, 외교, 군사 등 주요 부서들로 구성되었다. 특히 군사·외교·재정 분야에서 황제의 직접 통치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편이 이루어졌다.
이와 함께 국가의 상징체계도 전면적으로 변경되었다. 국새는 기존의 조선왕조보 대신 ‘대한국새(大韓國璽)’로 바뀌었으며, ‘대한’이라는 국호가 공식 문서, 도량형, 우표, 화폐, 인장 등 모든 국가 매체에 새겨지기 시작했다. 이는 언어와 시각 기호를 통해 국민에게 새로운 국가 정체성을 각인시키려는 시도였다.
또한 황제의 권위를 강조하기 위한 의례와 연호도 제정되었다. 고종은 즉위와 함께 연호를 ‘광무(光武)’로 선포하였으며, 이후 각종 문서에 연호 사용이 의무화되었다. 이는 청의 ‘광서’ 연호를 사용하던 기존 질서에서 완전히 벗어나, 독자적 연호 체계를 갖춘 제국으로의 선언이었다.
이러한 기호 질서의 재편은 단순한 명칭 변경을 넘어서, 국민이 일상에서 체제 전환을 체감할 수 있도록 만드는 중요한 장치였다. 즉 환구단에서의 선포가 관념적 차원에 머물지 않고, 실제 생활 속의 제도와 상징으로 확장된 것이다.
4️⃣ 환구단과 공간 변화의 역사적 의미
환구단은 대한제국의 선포라는 일회성 사건의 무대가 아니라, 그 이후 국가 공간 질서와 정치 질서 전환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았다. 황제가 하늘에 제를 올리고, 제국 수립을 공식화한 장소로서 환구단은 곧 ‘근대 제국의 출발점’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갖게 된다.
이 공간에서의 의례는 권력의 정통성을 하늘에서 받는다는 상징을 내포하고 있었고, 이후 반복된 제례 의식과 함께 그 상징성은 강화되었다. 환구단은 단지 조선 말기의 건축 유산이 아니라, 제국 전환기의 정치적·문화적 기억이 응축된 장소였다.
더불어 환구단은 도성의 시각 질서 변화와 함께, 행정·기호 체계 전반의 개편이 시작된 기점이었다. 대한제국이라는 국호의 사용, 황제 중심의 관제 개편, 서양식 궁궐 건축과 국새·연호의 변경은 모두 환구단에서 비롯된 상징 질서의 파급이라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환구단은 ‘의례 공간’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제국 체제의 공간적 상상력을 실현한 장소였다. 이 공간은 대한제국이 자신을 어떻게 정당화하고, 대내외적으로 표상하려 했는지를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실체였으며, 환구단 답사기의 흐름 속에서도 가장 중심적인 장소 중 하나로 계속해서 다뤄져야 할 중요한 역사적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