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의 상징들: 황제·국호·연호·깃발에 담긴 의미
1️⃣ 제국의 언어를 구성하다: ‘대한제국’ 국호와 ‘광무’ 연호의 의미
1897년 10월 12일, 환구단에서의 제천의례를 통해 고종은 대한제국의 황제로 즉위하고 국호를 ‘조선(朝鮮)’에서 ‘대한(大韓)’으로 바꾸었다. 이는 단순한 명칭 변경이 아니라 정치적·외교적 선언이었다. ‘대한(大韓)’이라는 명칭은 한반도의 삼한(三韓)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외세의 침탈 속에 주권을 수호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담고 있었다.
국호 변경은 청나라와의 사대관계를 명시적으로 단절하는 의미였다. 조선은 600년 가까이 ‘왕국’ 지위에 머물렀고, 황제 칭호는 명·청 이외의 군주가 스스로 칭할 수 없었다. 고종의 국호 변경은 청에 대한 종속 관계를 명확히 청산하고, 국제법상 자주국임을 대외에 천명하는 정치적 표현이었다. 이는 바로 환구단에서 거행된 제천의례의 핵심 목적이기도 했다.
고종은 황제 즉위와 함께 연호를 ‘건양(建陽)’에서 ‘광무(光武)’로 바꾸었다. ‘광무’는 빛날 광(光), 호반 무(武)를 사용하여, 군주의 권위와 국가의 자주적 역량을 상징하고자 한 표현이었다. 특히 연호는 황제국의 전유물이었기에, 연호의 채택 자체가 하나의 국제정치적 제스처였다.
이 국호와 연호는 독립협회를 중심으로 한 지식인 사회에서도 환영받았다. ‘대한’이라는 명칭이 조선이라는 명칭보다 더 능동적이고 자주적인 느낌을 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독립신문 역시 국호 변경 직후 이를 “새로운 자주 국가의 이름”으로 반복하여 보도하였으며, 이 명칭이 지닌 독립성과 자주성을 강조하였다.
2️⃣ 황제 칭호와 국기: 대한제국의 정치적 시각화
고종은 환구단 제천의례에서 스스로 ‘황제(皇帝)’라 칭하며, 기존의 ‘왕(王)’의 칭호를 버렸다. 이는 단지 위계의 격상 문제가 아니라, 국제질서에서의 자주적 위치를 새롭게 규정하려는 시도였다. 동아시아에서 ‘황제’는 천자의 지위를 상징하며, 동시에 독립 국가의 절대적 주권을 의미하는 표현이었다.
고종의 황제 칭호 채택은 당시 동아시아 국제정치에서 거대한 파장을 일으켰다. 청은 이미 시모노세키조약을 통해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포기한 상태였지만, 조선이 황제를 칭하는 것에는 강하게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 일본은 이 칭호가 러시아의 지원을 배경으로 한 ‘가짜 자주’라 주장하였으며, 미국과 영국은 이를 내정 문제로 간주하면서도 ‘형식상의 독립’이라는 평가를 했다.
태극기는 1883년 조선의 정식 국기로 공포하여 사용되었지만 대한제국 수립 이후 이를 더욱 공식화하였다. 태극 문양은 음양의 조화를, 사괘는 하늘·땅·물·불의 자연 질서를 상징하며, 이는 곧 조화로운 우주의 질서 속에 국가가 존재한다는 철학을 내포하고 있다. 대한제국은 이 태극기를 황제국의 국기이자 자주국의 상징으로 명문화하였다.
3️⃣ 국장의 정비: 이화문과 독수리 문장의 의미
고종은 대한제국 선포와 더불어 황실의 시각 상징 체계를 새롭게 정비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화문(李花紋)’이 중심적인 시각 상징으로 부각되었다. 이화문은 오얏나무(자두나무)의 꽃 형상을 추상화한 문양으로, 전주 이씨 왕조의 상징이자 황제의 권위와 정통성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대표 문양으로 활용되었다.
이화문은 문서, 궁궐 건축, 황실 복식, 화폐 등에 널리 쓰이며 대한제국 황실의 권위와 품격을 상징하였다. 특히 정교한 도식화와 금장 장식으로 제작된 이 문양은 제국의 위엄과 전통의 계승을 동시에 드러내는 시각적 상징이었다.
한편 대한제국은 국제 관계 속에서 제국의 형식을 완비하고자 서양 열강의 황제 상징도 부분적으로 참조하였다. 독수리 문장은 러시아·독일 등의 쌍두독수리 문장을 연상시키는 도안이 외교용 문서나 휘장에 제한적으로 사용된 정황이 있다. 이는 대한제국의 황제 체제가 국제 질서 속에서 대등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시도로 해석된다.
이러한 상징의 이중 구조는 대한제국이 내세운 전통성과 근대성의 혼합 전략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평가된다.
4️⃣ 환구단에서 집약된 상징 정치의 무대
대한제국의 상징은 결코 추상적인 개념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것은 제천의례라는 구체적 공간과 의식 속에서 구현되었다. 1897년 환구단 제례는 황제 칭호, 국호 선포, 연호 변경, 깃발과 국장의 제시 등 일련의 제국 상징을 압축적으로 구현한 무대였다.
환구단은 단지 제례의 공간이 아닌, 대한제국이라는 신국가가 세계 무대에 등장하는 ‘연극적 장치’이자 ‘상징의 극장’이었다. 고종은 환구단이라는 역사적 공간에서 고대 제천의 전통을 복원하면서도, 근대적 국가 정체성을 함께 입혔다. 제국의 상징은 그렇게 의례와 공간, 정치와 언어가 융합된 종합예술로 작동했다.
환구단은 단지 유적지가 아닌,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전환되던 정치적 현장이자 상징의 집합체였다. 그 속에서 고종은 스스로 권위를 연출하고, 세계에 자주국임을 천명하였다. 대한제국의 상징들은 그 자체로 ‘제국의 언어’였으며, 오늘날에도 잊히지 말아야 할 역사적 기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