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구단과 정동 공간사⑥] 종교·교육계 인물과 사건
1️⃣ 정동의 복합 공간성과 종교·교육의 확산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 정동은 단순한 외교 지구를 넘어서, 서양 선교사와 교육가들이 모여드는 종교·교육 중심지로 변모했다. 이는 고종이 환구단을 중심으로 황제권을 선포하고, 외교를 강화하는 한편, 문명화된 국가로서의 위상을 대내외에 과시하고자 한 전략과도 관련된다. 외국 공사관이 밀집한 정동은 곧 서양 종교와 교육 기관이 자리 잡을 수 있는 여건을 제공했고, 이는 한국 근대화의 종교·교육 측면을 상징하는 공간이 되었다.
미국 북장로교와 감리교는 1880년대 초부터 조선에 선교사를 파견했으며, 정동은 그 활동의 핵심 무대였다. 초기 선교사들은 단순한 포교 활동을 넘어 병원, 학교, 고아원, 여성 교육 기관 등을 설립하여 조선 사회에 근대 문명을 이식하는 역할을 했다. 이들은 종교적 신념과 함께 교육과 의료를 실천의 영역으로 삼았고, 특히 고종의 신임을 얻으며 정동 일대에 본격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다.
2️⃣ 헨리 아펜젤러와 배재학당의 탄생
헨리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 1858~1902)는 미국 감리회 선교사로, 1885년 조선에 도착하여 기독교 선교뿐만 아니라 조선의 근대 교육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는 1885년 8월 정동에 '배재학당(培材學堂)'을 설립했다. 배재학당은 오늘날의 중·고등학교와 대학에 해당하는 근대적 교육기관으로, 조선의 청년들에게 영어, 수학, 천문, 지리, 화학 등의 과목을 가르쳤다.
아펜젤러는 유교적 질서가 지배하던 조선 사회에서 새로운 가치와 지식을 전달하려 노력했으며, 특히 기독교 정신을 기반으로 한 '도덕과 학문'의 균형을 강조했다. 그는 배재학당 학생들을 통해 조선 사회에 새로운 지식인 집단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이 학당 출신 인물들 가운데는 후일 독립운동가, 언론인, 교육자로 성장한 이들이 많다.
또한 그는 교육뿐만 아니라 정동교회를 설립하였고, 단지 종교 활동에 그치지 않고 교육과 계몽, 사회활동을 병행하며 정동의 근대화 운동을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아펜젤러는 1902년 배를 타고 목포로 가던 중 해난 사고로 순직하였으며, 그의 묘소는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안장되어 있다.
배재학당의 설립은 단순한 교육기관 설립을 넘어서, 정동 공간을 조선 근대 교육의 출발점으로 만든 사건이다. 이 학당은 오늘날까지 존속하고 있으며, 학교 캠퍼스 내에 아펜젤러 기념관과 초기 학당 건물 일부가 복원되어 당시의 교육 정신과 공간적 기억을 보존하고 있다.
3️⃣ 메리 스크랜튼과 이화학당의 여학교 운동
메리 스크랜튼(Mary F. Scranton, 1832~1909)은 미국 개신교 감리교회의 여성 선교사로, 조선에 파견된 첫 여성 선교사였다. 그녀는 1886년 정동에 '이화학당(梨花學堂)'을 설립하였고, 이는 조선에서 공식적인 학교 체계로 운영된 최초의 여성 교육기관으로 평가된다. 당시 조선은 여성의 공교육이 사실상 부재한 상태였기에, 이화학당의 설립은 조선 사회의 가부장적 전통에 도전하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스크랜튼은 기독교적 인도주의와 여성의 계몽이라는 명확한 목표 아래, 여성에게도 학문과 교양, 그리고 기독교적 도덕 교육이 필요하다는 믿음을 실현하려 했다. 이화학당은 초창기에는 극심한 사회적 거부감 속에서 출발했으나, 점차 여성 교육의 필요성과 정당성이 확산하며 성장했다. 이화학당은 후일 이화여자대학교로 발전하였고, 조선 여성의 사회 진출과 근대화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스크랜튼 역시 양화진 선교사 묘원에 묻혀 있으며, 그녀의 교육철학은 후일 이화 정신의 기초로 이어졌으며, 오늘날에도 그 정신은 계승되고 있다. 이화학당은 단지 하나의 학교를 넘어서, 조선 여성의 주체성을 확립하는 공간이었으며, 정동이라는 공간의 역사성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
4️⃣ 알렌과 제중원의 의료선교
호러스 알렌(Horace N. Allen, 1858~1932)은 미국 북장로교의 선교사이자 의사로, 조선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濟衆院)의 운영을 주도한 인물이다. 그는 1884년 갑신정변 당시 중상을 입은 민영익을 치료하여 고종의 절대적 신임을 얻게 되었고, 이후 조선 정부의 허가 아래 제중원을 설립했다. 이는 조선 역사상 최초의 공공 병원이자, 근대적 의료체계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제중원은 초기에는 정동 외곽에 위치하였으나, 이후 미국인 루이스 세브란스의 후원으로 1904년 신촌에 ‘세브란스 병원’이 설립되며, 의료·교육 기능을 계승·발전시켰다. 그러나 그 초기 역사와 운영은 정동 공간 안에서 시작되었으며, 고종은 이를 통해 서양 문명의 수용과 국가의 근대화를 대외적으로 과시하고자 했다.
알렌은 의료를 통해 선교와 외교를 동시에 수행했으며, 후일 미국 공사로 임명되어 외교무대에서도 활동했다. 그는 의료, 외교, 종교 활동을 정동 공간 안에서 유기적으로 실천한 대표적 인물로, 정동이 지닌 근대성과 다층성을 상징한다.
5️⃣ 공간의 기억과 종교·교육 유산의 계승 과제
정동은 외교 지구로만 기억되기에는 너무나 복합적인 역사를 지닌 공간이다. 배재학당, 이화학당, 제중원 등은 단지 근대화의 상징이 아니라, 종교적 신념과 교육 실천이 실현된 현장이었으며, 조선 사회의 변화를 이끈 거점 공간이었다. 이러한 공간의 특성은 고종의 환구단 건립 및 대한제국 수립과 맞물려, 조선이 '자주적 근대화'를 시도한 복합적 흐름 속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정동 공간의 보존과 활용은 여전히 외국인 선교사들의 활동이나 교육기관 건축물 중심으로만 소개되고 있으며, 당시의 사상, 갈등, 변화, 수용의 과정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역사 콘텐츠는 부족한 실정이다. 더불어, 당시 조선인 교육자, 여성 학생, 의료 실무자 등 다양한 주체들의 목소리는 거의 조명되지 않고 있다.
앞으로의 과제는 단지 건축물의 보존을 넘어서, 이 공간에 서린 종교·교육 실천의 의미를 재구성하고, 이를 환구단과 정동의 전체 맥락 속에서 입체적으로 연결하는 작업이다. 환구단은 제국의 제례 공간이자 자주적 상징 공간이었고, 정동은 이를 넘어서 선교, 교육, 의료의 장으로 펼쳐진 근대화의 실험 공간이었다. 이제는 이들 공간에서 활동한 인물과 사상, 그리고 실천을 통합적으로 조명함으로써, 정동과 환구단의 역사를 현재의 시민사회 속 살아 있는 기억으로 복원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