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속 환구단: 사진 한 장에 담긴 제국의 기억
1️⃣ 교과서에서 처음 만난 환구단
많은 이들이 환구단을 처음 접하는 계기는 대개 중학교나 고등학교의 국사 교과서다. 근현대사 단원에서는 1897년 고종이 환구단에서 황제 즉위식을 올린 사실이 흑백 사진과 함께 소개되며, 이를 통해 대한제국의 선포라는 역사적 전환점이 간략히 설명된다. 환구단은 규모는 작고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상징성은 절대 작지 않다. 교과서 속 환구단은 단지 황제 즉위식이 치러진 무대가 아니라,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넘어가는 역사적 전환의 상징이자, 한 국가의 정체성을 다시 세우고자 했던 공간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사회 교과서에서는 환구단을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소개하며, 제천례가 고대부터 이어졌으나 조선 초 중국과의 외교 관계로 폐지되었다가,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에 의해 다시 시행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통해 고종이 자주독립국으로서의 위상을 드러내고자 했던 의도가 요약되어 있다. 이와 함께 교과서에는 고종의 사진과 과거 환구단의 모습이 함께 실려 있어, 학생들이 시각적으로도 이 공간을 기억하게 된다.
다만 교과서의 서술은 개괄적이며, 제천례의 구성이나 정치적 의미는 축약된 형태로만 제시되기에 역사적 맥락을 깊이 이해하긴 어렵다. 교과서는 중요한 출발점이지만, 그 안에 담긴 역사적 상징을 깊이 있게 해석하는 작업이 뒤따라야만 진정한 역사 교육으로 연결될 수 있다.
2️⃣ 사진의 시선: '황제의 공간'을 보는 방식
교과서에 실린 대표적인 환구단 사진은 석재로 이루어진 원형 제단이 몇 단으로 구성되어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겹겹이 쌓인 기단 위에 놓인 원형 제단은 원만함과 완전함을 상징하는 하늘의 형상을 반영하고 있다. 비록 흑백사진이지만, 장엄하고도 고요한 분위기는 이 제단이 단순한 구조물이 아닌 상징적 공간임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 한 장의 사진만으로 환구단의 역사적, 문화적 의미를 모두 전달하긴 어렵다.
실제로 환구단은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황제 즉위식을 올린 장소이자, 황제가 직접 하늘에 제를 올리는 제천례가 거행되었던 중요한 공간이다. 이러한 제천례는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라 대한제국이라는 새 국가의 정통성을 대내외에 선포하는 의례였다. 그 형식은 유교적 제례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조선 후기 국가 제사의 틀을 계승하여 한국적 특색을 드러냈다. 고종은 황제로서 이례적으로 직접 참여함으로써, 국가의 독립과 권위를 천명하고자 했다.
사진 속 황궁우(皇穹宇)는 원형 기단 위에 정사각형 평면으로 세워진 단아한 목조건축으로, 둥근 하늘과 네모난 땅이라는 동아시아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세계관이 이 건축물에도 반영되어 있다. 황궁우는 제단의 북쪽 중심축에 위치한 신위전으로, 하늘의 신위를 봉안하여 제례의 중심 역할을 수행한 공간이다. 이는 대한제국의 황제가 하늘에 직접 제를 올렸다는 상징을 구체적으로 구현한 구조물이다. 단정한 지붕 선과 정교한 창호는 조선 후기 목조건축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준다. 사진에 담긴 황궁우는 단순한 제사 공간을 넘어, 대한제국의 정신적 중심이자 시각적 상징으로 기능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3️⃣ 교과서 서술의 한계와 재해석의 필요
근현대사 교육에서 환구단은 ‘고종의 즉위 장소’라는 기능적 의미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환구단은 조선 왕조의 외교 질서에서 벗어난 새로운 국가 정체성을 시도하면서도, 동시에 유교적 전통을 계승하고자 했던 고종의 정치적 실험이 이루어진 공간이었다. 조선시대 국왕은 명나라와 청나라의 책봉 체제를 의식해 하늘에 직접 제를 올릴 수 없었지만, 고종은 황제로서 자주적 국가의 권위를 제천으로 천명하고자 했다. 이는 대한제국의 출범을 내외에 선언하는 의식이었으며, 동아시아 질서에서의 독립을 표방하는 행위였다.
사진은 하나의 상징적 장면으로 많은 것을 암시할 수 있지만, 환구단의 건축적 구조, 의례의 절차, 공간 배치, 정치·문화적 상징성 등은 별도의 설명이 필요하다. 특히 교과서에 실린 사진은 환구단의 현재 모습과는 다르기 때문에, 학생들이 이를 현재와 연결하여 이해하는 데 혼란이 생길 수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해석과 설명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또한, 제천례가 단순한 종교의례일 뿐만 아니라 외교적·정치적 성격을 가진 국가 차원의 상징 행위였다는 점이 교과서에서도 강조되고 있지만, 이를 학생들이 단순히 한 장면으로 암기하기보다는, 그 행위가 어떤 역사적 메시지를 내포했는지를 파악할 수 있도록 더 깊은 이해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4️⃣ 사진 너머의 역사, 우리가 새롭게 써야 할 이야기
환구단은 단순한 제단이 아니다. 그것은 제국을 선포하고, 독립국으로서의 자주성을 선언했던 공간이며, 황제 고종의 정치적 비전이 응축된 제례의 장이었다. 교과서 속 사진은 말하지 않지만, 그 공간은 수많은 언어로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 고종이 친히 하늘에 제를 올리고, 제국의 독립을 선포하며, 조선의 왕에서 대한제국의 황제로 스스로를 바꾸어간 그 과정을 담은 공간이 바로 환구단이다.
오늘날 환구단은 서울 중심부의 복잡한 도시 공간 속에 자리하고 있으며, 웨스틴조선호텔의 일부 부지와 맞닿아 있다. 현재 남아 있는 황궁우와 원구단 정문은 복원 정비되어 일반에 공개되고 있지만, 환구단 전체가 지닌 역사적 맥락을 입체적으로 체험하기에는 여전히 제약이 따른다. 따라서 교과서의 사진에 담긴 단편적 장면을 넘어, 환구단이 지닌 공간적 의미와 역사적 함의를 교육 현장에서 더욱 깊이 있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역사적 공간은 교과서 속 한 장면으로만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 학생들이 실제로 환구단을 방문하여 공간을 체험하거나, 디지털 콘텐츠, VR 자료,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제례의 절차와 상징성을 직접적으로 접할 수 있다면, 역사 교육의 깊이는 한층 더 깊어질 것이다. 환구단이 과거와 현재를 잇는 교육 자산으로 자리매김하려면, 체험과 미디어를 아우르는 입체적 교육 콘텐츠의 개발과 보급이 필수적이다.
결국, 교과서의 사진은 기억의 시초일 뿐이다. 진정한 기억은 그 사진을 둘러싼 이야기를 재구성하고, 맥락을 이해하고, 그 공간을 다시 체험함으로써 비로소 완성된다. 환구단은 지금도 우리 곁에 존재하며,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기억하고 이해하느냐에 따라 살아 있는 역사로 다시 거듭날 수 있다.